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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정조, 경종, 인종 의문의 죽음
조선왕 중에는 독살을 당했을 거라고 추측하는 왕들이 몇 명 있다. 죽음에 대해서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지만 모두 갑자기 죽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이 생전에 반대파들의 견제를 받아야 했고 갑자기 죽었고, 죽은 다음에 반대파들이 권력을 잡은 공통점이 있어서 독살이 되었을 것이다라고 추측한다.
고종황제
비록 국권을 일제에 넘겼지만 일제에 완강하게 대항을 했다. 1905년 을사늑약이후 허수아비 황제로 있었지만 1907년 헤이그에 밀사를 보내 조선이 독립국이라는 것을 전 세계에 알리려 했다.
이러한 고종은 일본의 입장에서는 커다란 장애물이 이었다. 헤이그 밀사 사건이후 고종은 강제로 퇴위를 당하고 아들인 순종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하지만 독립에 대한 의지와 일본에 대한 반감으로 일제는 항상 고종의 존재가 부담스러웠다. 고종은 죽음과 국상 과정에서 3.1 만세운동이 생겨났다.
고종은 1919년 1월 21일 사망했는데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날 아침까지도 멀쩡하게 음식을 먹었고 고종이 그날 먹은 식혜와 커피 같은 음료에 독이 있어서 죽었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다.
고종은 커피를 아주 좋아했다. 그래서 커피에 독을 타는 사건이 몇 번 있었다고 한다. 그 커피를 아들인 순종이 마셔서 순종 또한 죽을 뻔했다고 한다.
순종은 이 사건이후 건강이 급격하게 악화되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일제에 의한 것이라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일제에 의해서 폐위되고 폐위된 이후에도 왕실의 자금인 내탕금을 통해서 독립운동을 지원했던 고종을 일제는 항상 부담스러워했기 때문에 독살설이 생긴 것 같다.
만일 고종이 독살된 것이 사실이라면 명성황후와 함께 일제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조선의 왕과 왕비였던 것이다. 심한 분노감이 생기는 고종의 독살설 정확히 밝히기는 어렵지만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조는 평생 죽음의 공포에서 살았다.
그가 세자 시절에는 물론 왕이 된 이후에도 그의 처소에 자객이 여러 번 든 적이 있다. 그리고 독살에 대한 염려를 항상 했던 왕이다.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갖혀서 죽은 다음 사도세자의 아들로 왕이 되는 과정은 무척 힘들었다. 왕이 된 이후에도 사도세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세력들과 끊임없이 갈등관계에 있었다.
정조가 독살 되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거론한 사람이 정약용이다. 정약용은 "여유당전서"라는 책에서 정조가 독살되었다고 말했다.
정조는 정말 갑자기 죽었다. 지병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갑자기 죽었고 죽은 다음에 바로 정조와 대척점에 있었던 세력들이 정권을 잡았다.
정조 이후 조선은 세도정치라는 이름으로 왕권이 추락되고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졌다. 이후 모든 왕들은 그저 존재하고 권력은 신하에게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정조의 독살설이 현재까지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조 이후 반대파들은 순조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정권을 독차지했다. 세도정치의 시작이었다.
후세의 사람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이 정조의 독살설이고 현대에 와서는 영화와 드라마로 많이 만들어졌다. 정조의 개혁정치는 여기서 멈추었고 조선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경종의 독살설은
정조의 할아버지인 영조가 평생 힘들어 했던 것이다. 경종은 우리가 드라마에서 많이 접한 장희빈의 아들이다. 어머니의 비극적인 죽음이 연산군과 비슷했다.
역사적으로 연산군을 경험한 신하들은 장희빈의 아들인 경종이 즉위하는 것에 반대가 심했다. 특히 당시 집권세력인 노론은 극렬하게 반대를 했지만 숙종은 이를 무시했고 경종이 즉위했다.
경종은 천성이 병약했다. 즉위하고도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다음 왕위를 어린 자식이 아닌 이복동생에게 물려주려고 세자가 아닌 세제로 연잉군으로 했다.
연잉군이 나중에 왕이 되었는데 그가 바로 영조이다. 영조는 왕위 될 서열이 아니였고 출신 또한 비천했다. 그래서 영조가 왕위에 오른 것에 불만인 세력이 많았는데 그 세력들이 퍼트린 것이 경종 독살설이다.
경종은 연잉군이 준 게장과 생감을 먹고 죽었는데 이 게장과 생감을 연잉군이 경종에게 주었다고 하는 게 독살설의 핵심이다.
영조는 재위기가 내내 독살설때문에 힘들어했다. 이인좌가 난을 일으키는 명분 중 하나가 영조의 경종독살설이다. 비록 실패한 반란이었지만 영조에게는 부담스러운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 경종의 죽음이다.
이러한 경종 독살설은 영조가 즉위를 하고 영조가 죽을 때까지 영조를 괴롭히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영조는 이미 세제였고 형인 경종이 위중한 상태여서 가만히 있어도 왕위를 물려받을 수 있는데 무리하게 경종을 독살한 이유는 없었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다.
인종
문정왕후에 의해서 독살 되었다고 한다. 중종이 죽고 아들인 인종이 즉위를 하였지만 문정왕후는 인종을 무척 싫어했다. 문정왕후는 인종의 친어머니는 아니다.
문정왕후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가 바로 명종이다. 문정왕후는 자신의 아들이 왕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었는데 그러기에는 인종이 부담이 되었던 것이다.
인종 또한 문정왕후의 이러한 마음을 알고 있었고 효자로 소문이 났었다. 인종은 비록 친어머니는 아니지만 문정왕후를 극진히 대했는데 문정왕후는 인종을 막대하고 빨리 죽기를 바랐다고 한다.
인종은 문정왕후가 준 떡을 먹고 죽었다고 한다. 인종은 조선왕 중에서 짧은 재위기간을 가진 왕 중에 한 명이다. 겨우 8개월간 왕위에 있었다.
인종은 문정왕후가 준 떡을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죽었고 다음 왕은 문정왕후의 어린 아들 명종이 이어받았다. 명종은 명색이 왕이지만 문정왕후에게 회초리로 맞기도 했다.
문정왕후는 인종이후 조선시대 최대의 권력자가 되어서 왕도 어떻게 하지 못하는 절대 권력을 누렸다. 그래서 인종이 독살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인종의 뒤를 이어 명종이 즉위했다. 인종과 명종은 서로 우애가 깊었다고 한다. 특히 인종은 명종을 가까이하고 아꼈지만 문정왕후에게는 눈에 가시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독살설의 배후에는 왕이 죽고 나서 이익을 보는 세력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외세에 의한 고종을 제외하고는 모두 반대 세력이 의심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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