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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인수대비, 문정왕후, 정순왕후_수렴청정과 절대권력의 왕비들

왕비는 왕의 정실부인을 말한다. 대부분 왕의 조력자 정도의 역할을 했지만 절대 권력을 누렸던 왕비들도 몇 명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자식인 왕을 통해서 그 권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명성황후처럼 남편인 왕을 대신해서 절대 권력을 행사했던 왕비도 있다. 명성황후만 황후로 말하는 것은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가 되었기 때문에 왕비도 황후로 불리는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왕이 앉는 용상 뒤에 발을 쳐놓고 누군가가 왕을 조정하는 듯한 느낌으로 대신들 회의에 간섭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것을 수렴청정이라고 한다.

 

"수렴"은 발을 쳐 놓을 것을 말하고 "청정"은 말 그대로 듣는다라는 뜻이다. 발 뒤에서 대신들과 왕이 정사를 논하는 것을 들으면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왕을 대신해서 뒤에서 수렴청정을 하는 사람이 모든 결정을 한다고 보면 되는데 이러한 수렴청정은 보통 왕의 나이가 어려 직접 정치를 하기 힘들 때 왕실의 어른인 왕의 어머니가 왕을 도와주는 것을 말한다.

 

최초로 수렴청정을 한 왕비는 세조의 왕비이고 성종의 할머니인 정희왕후이다.

 

정희왕후는 성종이 13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성종이 어른이 될 때까지 수렴청정을 하였다. 며느리 인수대비가 유명해서 정희왕후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수렴청정은 정희왕후가 하였지만 실질적인 권력은 성종의 어머니인 "인수대비"가 행사하였다. 인수 대배는 세조의 큰 며느리였지만 남편이 세자 시절이 요절을 하자 궁궐을 떠났었다.

 

하지만 세조의 다음 보위를 이은 예종은 제위 1년 만에 승하하자 다음 왕위에 누구 오를 것인가를 두고 왕실 내부에서 치열한 정치적 거래가 있었다.

 

당시 최대의 권력가인 한명회와 성종의 어머니인 인수대비가 서로 합의해서 왕위에 오른 사람이 인수대비의 둘째 아들 성종이었다.

 

성종은 형이 있어서 왕위 서열이 아니었지만 한명회의 사위였다. 인수대비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후 죽음을 맞이한 단종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한명회와 손을 잡은 것이다.

 

한명회의 사위로 왕위에 오른 성종은 할머니인 정희 황후가 수렴청정을 하였지만 실질적으로 어머니인 인수대비와 한명회가 성종이 성인이 될 때까지 정치에 깊숙이 관여하였다.

 

인수대비는 성종의 비인 윤씨를 폐비시키고 사약을 받아 죽음을 당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폐비 윤 씨의 아들이 다음 왕위에 올랐는데 그가 바로 조선 최대의 폭군 연산군이다.

 

인수대비는 자신의 손자인 연산군에게 패륜에 가까운 대접을 받고 궁에 갇혀 지내다가 결국은 죽었다. 조선 최고의 임금인 성종의 어머니로 성종이 성군이 되게는 했지만 손자가 조선 최대 폭군이 되는 것에도 일정한 책임이 있다.

 

명성황후는 조선 26대왕 고종의 정비이다.

 

고종은 철종이 자식이 없이 승하를 하자 당시 세도가인 안동 김 씨 세력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왕으로 고종을 왕위에 올렸다.

 

하지만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에 의해서 세도정치가 막을 내리게 되었다. 흥선대원군은  세도정치가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서 너무 잘 알고 있어 아들인 고종의 왕비는 철저하게 정치와 거리가 먼 인물로 맞이했다.

 

하지만 명성황후는 이러한 시아버지 흥선대원군의 기대와 달리 정치의 전면에 나서게 되고 자신의 가족인 민 씨를 요직에 앉히면서 흥선대원군을 권력에서 멀어지게 했다.

 

흥선대원군과 일본과 적대적 관계에 있었던 명성황후는 폐비가 될 위기와 암살을 피하면서 고종을 도와 적극적인 현실 정치 참여를 했다.

 

하지만 일제에 의해서 시해를 당하는 비극을 맞이했다. 주변에 정치적인 정적들이 너무 많았고 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민 씨 일가는 무능했다.

 

조선최초의 황후이고 비극적인 죽음은 당시 조선의 국권이 얼마큼 추락했는지를 알 수 있다. 명성황후 또한 여기에 자유로울 수는 없다.

 

문정왕후는 중종의 두번째 왕비였다

중종의 첫 번째 왕비인 장경왕후가 죽자 왕비가 된 문정왕후는 아들인 명종이 즉위하자 8년간 수렴청정을 하였다. 절대권력을 행사했다.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은 폭정으로 유명하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여인천하의 정난정과 남동생인 윤원형과 함께 수많은 비리와 권력의 남용을 저질렀다.

 

왕은 허수아비였고 심지어 왕이 말을 듣지 않으면 때리기까지 했다. 명종은 어머니인 문정왕후에게 맞으면서 울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불교에 많은 지원을 하였다. 심지어 승려 보우에게 벼슬을 내리기 까지 하였다. 하지만 불교 행사를 다녀와서 얼마 되지 않아 죽었고 문정왕후의 죽음 이후 정난정과 윤원형도 참수당했다.

 

문정왕후는 인종을 독살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중종이 죽고 인종이 즉위했지만 불과 9개월 만에 죽고 말았다. 인종은 문정왕후에게 효를 다했지만 문정왕후는 인종이 죽기를 바랐다.

 

결국 인종이 죽고 자신의 아들인 명종이 즉위했지만 실질적인 왕권은 문정왕후에게 있었다. 조선시대 최고 권력을 누렸다고 할 수 있다.

 

정순왕후는 영조가 66세에 15세의 나이로 왕비가 된 인물이다. 사도세자가 죽음을 맞이하는데 관여를 했다는 설이 있고 정조와는 관계가 좋지 않았다.

 

정조가 갑자기 죽자 아들인 순조가 11살의 나이로 즉위하자 수렴청정을 하게 되었다.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 세도정치이다.

 

이때부터 조선은 실질적으로 왕권이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 고종이 즉위하기까지 왕은 허수아비였고 능력이 있고 총명한 왕족은 역모로 죽임을 당했다.

 

정순왕후는 수렴청정을 통해서 정치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자신의 반대세력은 싶아를 탄압하고 천주교를 금지하는 신유박해를 일으켜 많은 사람을 죽였다.

 

신유박해는 단지 천주교를 금지하는 종료적인 이유보다는 정치적인 이유가 컸다. 정조를 지지하는 세력인 북인과 남인들은 천주교를 믿는 사람이 많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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