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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자식들_문종, 수양대군(세조), 안평대군, 금성대군

세종대왕의 아들

조선 최대의 임금을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세종대왕이라고 말할 것이다. 세종대왕의 업적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말하기 어렵지만 한글 창제가 최고의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세종대왕은 자식을 많이 둔 조선의 왕으로도 유명하다. 모두 22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18명의 왕자와 4명의 공주를 두었다. 이중에 2명은 조선의 왕이 되었다.

세종의 자식들_문종,수양대군,안평대군,금성대군

세종의 자식을 보면 학문적 깊이가 남다른 문종과 안평대군이 있지만 수양대군처럼 잔혹한 사람도 있었다. 수양대군은 자신의 조카와 형제들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세종대왕의 장남은 문종이다. 소헌왕후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으로 이전의 조선 임금과는 달리 적장자로 왕위를 계승한 첫 번째 임금이다.

 

문종은 제위기간을 짧다. 하지만 아버지 세종을 대신해서 8년간 대리청정을 했는데 대리청정 기간까지 제위기간으로 치면 짧은 것은 아니다.

 

학문을 좋아하고 아버지 세종과 함께 한글 창제와 측우기 발명 등에 관여를 했지만 몸이 무척 병약했다. 아버지 세종이 죽음을 맞이 할 때 신하들을 불러 모아 놓고 아들을 부탁한 게 아니고 손자를 부탁할 정도였다.

 

문종은 여자 복은 없었던 것 같다. 첫 번째 세자빈인 휘빈 김 씨의 경우 궁궐에서 무당을 불러 놓고 잡풀을 하다가 발각되어서 궁궐에서 쫓겨났다.

 

두 번째 세자빈 순빈의 경우 동성애를 하다가 발각되어서 폐위되었고 단종의 어머니 권 씨의 경우 단종을 낳고 하루 만에 죽었다.

 

영화 "관상"에서 보면 문종은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아들인 단종을 지키려 동생 수양대군을 견제하려고 했지만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문종은 자신이 죽고 나서 동생들을 견제하기 위해서 김종서에게 단종을 부탁하지만 김종서는 단종을 지키지 못하고 계유정난에 의해서 죽음을 당한다.

 

수양대군은 세종의 둘째 아들이다. 조선 최초로 세자를 거치지 않고 왕이 된 사람이다. 조카인 단종을 몰아내고 반정을 일으켜 왕이 되는데 그가 바로 세조이다.

 

왕자 시절에는 아버지 세종을 도와서 월인석보다 역대병요 편찬을 주도하기도 했지만 형인 문종이 죽고 단종이 즉위하자 김종서를 제거하고 왕위에 오른다.

계유정난이라고 하는 반정을 일으키는데 반정 과정에서 많은 피를 보게 된다. 조카인 단종을 영월에 귀향 보냈다가 죽이고 김종서와 동생인 안평대군도 죽인다.

 

수양대군은 할아버지 태종 이방원과 많이 닮았다고 한다. 그리고 태종 이방원과 비슷한 길을 가면서 신하들이 아닌 왕이 다스리는 조선을 꿈꾸었다.

 

태종 이방원이 세종이 있게 했다면 수양대군의 조선 최대의 성군이 성종을 탄생시켰다. 성종은 세조의 손자로 조선시대 성군으로 유명한 왕이다.

 

단종의 복위 운동과 관련돼 사육신과 생육신들 많은 선비들이 수양대군에 의해서 죽거나 지방으로 귀향을 가게 되었다. 세조는 왕위에 오르고 악몽과 피부질환에 시달렸다.

 

세종은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이 야심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두 사람 모두 궁궐에서 멀리 떨어져 살게 하고 궁궐 출입을 못하게 했다.

 

안평대군은 세종의 셋째 아들이다. 그림과 서예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고 국보인 "몽유도원도"가 안평대군의 작품이다. 형인 수양대군과는 경쟁관계에 있었다.

 

안평대군의 서예 실력은 중국에서도 유명했는데 중국사람들이 안평대군의 글씨를 구입해 가기도 했다고 한다. 그의 독특한 글씨체를 안평체라고 했다.

 

문종이 죽고 나서 김종서와 뜻을 같이 했는데 이와 같은 이유로 형인 수양대군에 의해서 강화도로 유배되었다가 나중에 사사된다.

 

안평대군이 죽고 나서 아내는 관비가 되고 아들도 처형되었다. 조선 숙종 때 복권될 때까지 형인 수양대군에 의해 가족 모두가 몰살당한 비운의 왕자이다.

 

금성대군은 세종의 여섯째 아들이다. 금성대군의 계유정난 이후 수양대군에 의해서 삭녕 군으로 유배되었다. 단종이 폐위되고 세조가 즉위하고는 순흥부로 유배되었는데 이곳에서 단종의 복위 운동을 한다.

 

단종 복위를 위해서 의병을 모으고 거사를 준비하다가 관노의 밀고로 탄로 나서 사형을 당하게 된다. 금성대군이 사약을 받은 곳에서 혈흔이 묻은 돌을 주민들이 발견하고 단을 쌓고 제사를 지내 주었다.(이를 금성단이라고 한다)

 

경북 영주 소수서원 근처에 금성대군 신단이 있다. 순흥 부과 영주시 순흥인 것이다. 조선 순종 때 신단과 위폐를 모신 신단이 만들어졌다.

 

세종대왕의 둘째 딸 정의공주는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고 한다. 또한 역법과 수학에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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